
초여름의 열기가 조금씩 짙어지는 5월의 끝자락입니다. 낮에는 벌써 반소매 옷이 자연스러워지고, 잠깐만 걸어도 이마에 땀이 맺히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러너들의 마음은 지금 이 뜨거운 여름이 아니라, 벌써 선선한 바람이 부는 10월의 어느 아침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바로 며칠 전, 많은 러너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2026 서울 레이스 본접수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날 저녁 노트북 앞에 앉아 시계를 계속 확인했습니다. 하프 코스 접수 시간이 다가올수록 괜히 손끝이 긴장되고,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는 손에도 힘이 들어갔습니다.
누군가는 웃으며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리기 대회 하나 신청하는데 그렇게까지 긴장할 일이야?” 그런데 막상 서울 레이스 접수 화면 앞에 앉아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 순간은 단순히 참가권 하나를 얻는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 몇 달 동안의 나 자신과 약속을 맺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달리기 대회에 설레는 걸까
사실 달리기는 참 단순한 운동입니다. 비싼 장비가 없어도 되고, 특별한 장소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운동화 끈만 단단히 묶으면 집 앞 골목도, 공원 산책로도, 강변길도 모두 나만의 트랙이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혼자 달리는 것과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대회는 전혀 다른 감정을 줍니다.
저도 처음에는 기록을 세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몇 분 안에 들어와야 한다거나, 지난번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달리기의 진짜 매력은 기록보다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숨이 차오르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 어제보다 조금 더 오래 버텨낸 나를 발견하는 일, 그것이 달리기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서울 레이스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린다는 것은 단순한 운동 이상의 경험입니다. 평소에는 바쁘게 지나치기만 했던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도심의 길들이 그날만큼은 러너들을 위한 무대가 됩니다. 자동차 소리 대신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가 도로를 채우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립니다.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조금 벅차오릅니다.
접수 버튼을 누르며 생각한 나의 마음
서울 레이스 접수일, 저는 정각이 다가올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내가 정말 하프 코스를 뛸 수 있을까?’, ‘여름 동안 꾸준히 훈련할 수 있을까?’, ‘괜히 신청만 해놓고 중간에 지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신청 버튼을 누르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달리기가 제 삶의 태도와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달리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연습하지 않으면 몸이 먼저 알고, 무리하면 어김없이 통증이 찾아옵니다. 반대로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쌓아가면 어느 순간 몸이 달라지고, 마음도 함께 단단해집니다.
저에게 서울 레이스는 단순한 가을 마라톤 대회가 아닙니다. 5월의 내가 10월의 나에게 보내는 약속입니다. 지금은 덥고 지치고 아직 멀게 느껴지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준비하다 보면 어느 날 서울광장 출발선에 서 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물론 참가비가 예전보다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프 코스와 11km 코스 참가비를 보며 잠시 망설인 것도 솔직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때때로 나를 소모시키는 일에는 쉽게 돈을 쓰면서,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성장시키는 일에는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참가비를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앞으로 몇 달 동안 제 몸과 마음을 돌보겠다는 작은 투자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완주보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페이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 말은 흔하지만, 달려볼수록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게 됩니다. 출발 직후에는 주변 사람들의 빠른 속도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나도 모르게 페이스를 올리다가 금세 숨이 차고, 중간쯤 가면 ‘그만 걸을까’ 하는 생각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가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서울 레이스를 준비하는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벌써 체계적인 훈련 계획을 세웠을 것이고, 누군가는 기록 단축을 목표로 삼았을 것입니다. 반대로 저처럼 ‘부상 없이 완주하자’는 소박한 목표를 세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목표는 저마다 달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남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가올 여름 훈련은 분명 쉽지 않을 것입니다. 7월과 8월의 무더위, 장마, 갑작스러운 소나기, 높은 습도는 러너들에게 만만치 않은 조건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야만 10월의 선선한 바람이 더 값지게 느껴질 것입니다. 땀에 젖은 여름 저녁의 조깅, 숨을 고르며 걷던 공원길, 포기하고 싶었지만 다시 운동화 끈을 묶었던 순간들이 모두 서울 레이스 당일의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 서울 레이스 접수에 성공한 분들께는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혹시 선착순 접수에 실패해 아쉬움을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너무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꼭 공식 대회가 아니어도 우리는 언제든 달릴 수 있습니다. 집 앞 산책로에서도, 한강변에서도, 동네 공원에서도 각자의 레이스는 계속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서울 레이스를 통해 대단한 기록을 세우고 싶다기보다, 조금 더 성실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기 싫은 날에도 조금 움직이고, 지친 날에는 무리하지 않고 쉬어가며, 내 몸의 신호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달리기는 결국 나를 몰아붙이는 일이 아니라 나를 알아가는 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10월 11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 많은 러너들이 모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첫 하프 완주를 꿈꾸고, 누군가는 자신의 최고 기록에 도전하고, 또 누군가는 그저 건강하게 결승선을 통과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 모든 마음이 모이는 곳이 바로 서울 레이스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밤 저는 다시 운동화 끈을 고쳐 매어 봅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여름은 길겠지만 마음만은 이미 가을 아침의 출발선 위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레이스를 시작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꼭 달리기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매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멋진 레이스를 달리고 있는 중일 테니까요.
다가오는 여름,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 서울 도심에서 밝은 얼굴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 레이스를 준비하는 모든 러너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우리 각자의 속도로, 끝까지 힘차게 달려봅시다.